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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지기
윤동주가 태어난 곳은 북간도 지금의 중국 만주 지역입니다. 강을 경계로 서간도와 북간도로 나뉩니다. 당시 이곳은 청나라의 힘이 약해지자 많은 조선 사람들이 땅이 비혹한 간도로 옮겨 가서 살았어요. 이런 비옥하고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자연과 함께한 평화로운 추억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었어요. 그 마음을 길어 올려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어린 윤동주는 수줍음이 많았지만 모범적인 아이였습니다. 동갑내기 사촌인 몽규와 책이 너덜너덜해질때까지 책을 읽는 책벌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몽규와 함께 직접 잡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윤동주가 중학생이었을때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어 교과서를 배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동주가 다니던 은진중학교는 우리말로 우리글을 가르쳤어요. 이즈음, ..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쉽지만 사랑을 실천하는 건 어려워요. 행동하고 표현하는 사랑이 참 사랑이에요. 참사랑만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답니다. 슈바이처가 그의 삶을 통해 한 말이다. 말로만 하는 사랑, 그것은 참사랑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단 힘들고, 자신에게 더 유익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겠지요. 우리가 머리로는 알지만 이토록 하기 싫어하는 사랑을 베푸는 일을 평생 삶으로 보여준 슈바이처의 어린 시절로 가볼까요? 잘사는 것이 부끄러운 아이, 어린 슈바이처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아이도 한 방에 넘어뜨리는 것을 보고 부끄러워합니다. 넘어진 아이가 말합니다. 나도 너처럼 고기반찬을 먹고 자랐다면 힘이 셌을 거라고요. 그 말에 ..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돌보는 일을 하다보면 재잘재잘 말을 잘하는 아이들을 만나곤 합니다. 말이 많은 아이들을 볼 때면 호기심이 많거나 에너지 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수다를 다 들어줘야 하는 어른의 입장에서는 조금 피곤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랫만에 오프라 윈프리 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유독 이 부분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기를 좋아한다는 오프라 윈프리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그녀처럼 이야기 재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어릴때 작은 특성을 잘 갈고 닦는다면 성인이 되어 폭발적인 가능성과 장점으로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 위프리처럼 말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미혼모의 딸로 외가에서 키워졌습니다. 흑인에다가 외모도 별로고 뚱뚱한 편이죠. 어린 그녀를 좋아해..
우리가 퀴리 부인으로 알고 있는 노벨상을 수상한 마리 퀴리에 대해 알아봅시다. 마리 퀴리는 폴란드 출신입니다. 그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수업도 러시아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폴란드의 언어도 역사도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습은 일제 시대 우리나라와 비슷하네요. 우리도 일제 시대에 나라만 빼앗긴 것이 아니라 언어와 역사도 빼았겼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폴란드는 몰래 폴란드어 수업을 하다가 러시아 장학관이 오면 재빨리 러시아 역사책을 꺼내곤 했습니다. 나라를 빼앗은 약탈자의 역사를 배워야 하고 칭송을 해야 하는 것은 치욕 그 자체입니다. 마리 퀴리는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 반드시 성공해서 나라를 빛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라를 빛내는데 과학자만한 게 없습니다. 과학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세계적인 과학자 스티븐 호킹은 어린 시절 공부도 못하는 말더듬이였다고 합니다.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천재 과학자 스티븐 호킹이 그랬다니 말입니다. 당연히 스티븐 호킹은 타고난 영재였을 것이라 상상했습니다. 다행이라고 미소 지어야 할까요. 호킹도 공부 못하는 아이로 놀림 받는 흑역사가 있었으니 말입니다. 호킹은 좀 독특한 친구였습니다. 남들과 항상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뭔가 무섭게 빠져들때는 누가 불러도 모르고 열중을 했습니다. 호킹은 어릴때부터 탐험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데 열중했습니다. 평소에 친구들과 놀때도 남들과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 일부러 창의적인 일을 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 그에게는 일상이었습니..
에스파냐 바르셀로나에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1884년부터 짓기 시작해 지금까지 짓고 있다고 합니다. 100년이 훨씬 넘는 공사기간이죠. 기간도 어마어마 하지만 대성당의 독특한 디자인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건축물입니다. 이 성당은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했다고 합니다. 가우디를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겁니다. 초등학생 아이들도 가우디란 인물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것입니다. 뭐든지 빨리하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심리와는 조금 다르게 천천히 짓는 이 건축은 참 느리지만 독특하고 창의적으로 건축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어떨까요? 정부와 담당자를 탓하고 세계적으로 느리디 느린 건축에 대해 열을 올리며 비난을 하지 않을까 하는 부정적인 생..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일까요? 그럴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좀 더 특별하고 위대한 부자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요즘은 많이 잊혀져 가고 있지만 당대 최고의 부자이자 가진 것을 다 사회에 돌려준 카네기라는 사업가입니다. 진짜 부자는 자신의 돈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부유한 사람이겠죠. 자신만 많이 가지려고 움켜쥐고 있는 사람은 가난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계속 움켜쥐는 것이 아닐까요? 쥐어도 쥐어도 허기진 가난한 마음이 채워지지 않으니까요. 카네기는 어릴 때부터 꽤가 많았다고 합니다. 카네기의 토끼가 새끼를 낳자 토끼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문제는 많은 양의 토끼풀을 뜯는 것이 큰 일이었습니다. 그래..
김홍도는 어릴 적 무척 개구쟁이였습니다. 그 당시 아이들은 지금처럼 학원이나 개인공부로 바쁜 시절이 아니라서 매일 밖에서 뛰어 노는 것이 일이었겠지요. 김홍도는 틈만 나면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종이도 연필도 귀하던 때라 뭔가를 그리고 싶은 열정을 그렇게 표현했겠지요. 그러다 강세황이라는 유명한 분 눈에 띄게 됩니다. 김홍도를 유심히 지켜보던 그는 김홍도를 제자로 받아 들입니다. 일명 길거리 캐스팅이었습니다. 길거리 캐스팅이 요즘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나지금이나 숨어 있는 인재를 발탁하는 방법은 비슷했나 봅니다. 전문 화가에게 그림 공부를 한 김홍도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20살이 된 김홍도는 도화서의 화원으로 뽑혔습니다. 궁궐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지요. 엄청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