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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축구의 신(한국슈타이너) 본문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막을 내렸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우승입니다. 아르헨티나 축구의 신 메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메시는 아르헨티나 축구의 메시아였음을 증명한 셈이죠. 월드컵 우승으로 아르헨티나가 축구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우리 기억속에는 축구는 브라질이었습니다. 브라질 축구의 주역하면 누구를 떠올리게 될까요. 바로 펠레입니다.
이미 오래 전의 축구 스타여서 기억에서 잊혀져갈 즈음, 펠레에 대해 알아봅시다. 펠레는 17세에 브라질 국가대표가 되었습니다. 18세에 제6회 스웨덴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제7회 칠레 월드컵은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제9회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하여 브라질에 쥘 리메 컵을 안겨주었습니다. 쥘 리메 컵은 월드컵 우승컵으로 4년동안 보관만 하다가 다음 우승팀에 돌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10회 대회부터 지금까지의 우승컵인 피파컵으로 바뀌었습니다.
펠레의 가정환경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어린 펠레는 축구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축구 선수였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죠. 12살의 나이에 청소년 축구팀에 입단한 펠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다른 선수들보다 재빠르고 날렵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였지요. 그 덕에 펠레는 브라질의 유명한 축구팀 '산투스'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펠레의 활약을 가장 많이 보였던 대회가 스웨던 월드컵 준결승전입니다. 브라질은 프랑스와 경기에서 5대 2로 이기게 됩니다. 이 때 펠레는 3골을 넣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 여세를 몰아 펠레는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도 헤딩슛으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여기서 축구 천재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그 후 많은 부상과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펠레는 주저 앉지 않습니다. 제9회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심판의 부당한 판정에도 화를 참으며 자기의 감정을 추스르기도 했지요. 결국 브라질은 그림같은 골을 네 번이나 만들어 내고 우승컵을 차지합니다. 이 우승으로 브라질은 최초로 월드컵 3회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것은 축구의 신 펠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펠레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습니다. 나이지리아 전쟁을 멈추고 펠레의 축구 경기를 보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펠레는 가난과 일에 지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도 했습니다. 펠레는 37세에 축구를 멈추고 그동안 못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펠레는 때를 한참 전에 놓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지의 한국인이 아닌, 브라질인 펠레는 공부를 하여 나중에는 브라질 체육부 장관이 됩니다. 그 후 1999년 20세기 최고의 운동 선수로 뽑혀서 세계인들에게 희망을 몰고 다닙니다. 이제 21세기 최고의 운동선수는 누가 될지 기대해 봅니다.
잠깐 여담으로 '펠레의 저주'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펠레가 월드컵 우승 후보를 점치면 그 나라는 우승은커녕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예선전에서조차 탈락한 나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펠레가 예상한 이탈리아가 우승함으로써 마침내 '펠레의 저주'가 풀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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