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지기

텔레비전으로 그리는 그림 백남준_한국슈타이너 본문

독서논술

텔레비전으로 그리는 그림 백남준_한국슈타이너

달콤지기 이작가 2023. 10. 11. 17:23
728x90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아시나요? 잠시 백남준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백남준은 193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당시는 알다시피 일제시대네요. 예술 공부에 관심이 많던 백남준은 도쿄대 미학과를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교수의 눈에 띄어 일본을 떠나 독일로 갔습니다. 특에 박히지 않은 새로운 예술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백남준의 집안은 아주 부자였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독일에 간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공연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존 케이지는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 그릇 부딪치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유리창 깨지는 소리 등 시끄러운 소음을 모아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 백남준은 새로운 것을 깨우치게 됩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가 있다고 말이죠. 백남준은 존 케이지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백남준이 공연을 하는 도중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고 나가버리는 적도 있었습니다. 넥타이를 자르는 것도 공연의 일부였습니다. 그 공연이 <피아노포르테를 위한 습작(1960)>이었습니다.

1962년도에는 머리카락으로 글씨는 쓰는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먹물이 담긴 통에 머리카락을 담갔다가 빼더니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놀라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죠. 그 공연이 <머리를 위한 선>이었습니다.  백남준은 온 몸으로 공연을 보여주는 예술가였습니다.

백남준은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특이한 텔레비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화면이 거꾸로 되어 있고, 어떤 텔레비전은 소리만 나고 화면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텔레비전은 관객이 직접 켜야만 했어요. 백남준은 이 전시를 통해서 머지않아 사람들이 텔레비전에 얽매이게 되는 것을 예측했습니다. 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았지요.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느라 해야 할 일을 못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백남준은 사람을 따르는 텔레비전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지요.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라는 공연이 열렸습니다. 인공위성을 이용해 전 세계 여섯 개의 도시에서 동시에 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이용해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낸 것이지요. 백남준은 말합니다. "난 어리광쟁이야. 그저 그때그때 하고픈 일을 그냥 하지. 그러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거야. 그게 바로 예술이지." 백남준에게 예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지요. 건강 악화로 비록 휠체어를 타기는 했지만 불편한 몸으로 세계 곳곳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백남준은 세계에 비디오 예술을 널리 알린 인물입니다.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가 25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백남준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들의 불편한 시선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개성있고 창의적인 예술을 할 수 있었겠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변의 시선을 아주 많이 의식하는 민족중에 하나입니다. 나보다는 '우리'라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백남준에 대해 알아보면서 그의 자유로운 영혼이 부럽기도 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는 두둑한 뱃보가 더 본받을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얼마나 남을 의식하고 나의 의지나 열정을 누르며 살아왔는지...... 남이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도 않고, 남들은 나에게 생각만큼 관심도 없는데 말이죠. 이제 남 눈치보느라 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지난 후에 억울해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야겠네요.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