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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엄마손 떡볶이 25년차 덕후 이야기 본문

문화. 일상

명지대 엄마손 떡볶이 25년차 덕후 이야기

달콤지기 이작가 2020. 11. 1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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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앞에 있는 엄마손 떡볶이를 처음 입문했다. 처음 맛본 순간, 이런 떡볶이가 있나? 그 당시 가격이 25년전에 1인분에 900원이었다. 엄마손 떡볶이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떡볶이 1인분에, 못난이 만두, 그리고 오뎅 국물을 먹는 거였다. 그 당시 못난이 만두 1개에 100원, 크기도 초등학생 주먹만한 크기였다. 떡볶이 1인분에 못난이 만두 1개를 주문하면 값은 천원이었다. 그랬다. 그당시 나는 가난한 학생이었다. 천원으로 한끼를 해결하는 고학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서럽거나 슬프지 않았다. 천원의 행복이랄까. 천원으로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향수였을까? 그 후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런,,,, 입덧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명지대 엄마손 떡볶이였다. 친정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아니라 명지대 엄마손 떡볶이라니.... 입덧으로 고생하는 언니를 위해 동생은 먼길도 마다하지 않고 떡볶이를 공수해다줬다. 그러다 남편 직장을 따라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몇년을 살다가 문득 명지대 엄마손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에 살고 있지 않아서 그리워만 하다가 드디어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다. 이사 정리가 어느정도 되자, 명지대 엄마손 떡볶이를 사러 갔다. 내가 예전에 가난한 학생 시절에 먹던 그 맛이었다. 못난이도 여러개 먹었다. 김말이도 빼놓지 않고 먹었다. 오뎅 국물이 빠질수 있나. 두번정도 서울에 이사와서 사 먹었다. 그러다 몇달이 지나고 또 복병처럼 명지대 엄마손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다행히 직장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라 퇴근하고 명지대 방향으로 고고.

떡볶이 3인분과, 못난이와 김말이를 섞어서 1만원어치 주문을 했다. 그 사이 가격이 많이 올랐다. 당연하지 않은가. 25년이 지났으니.....

주문을 하고 까만 봉지를 들고 집에 왔다. 내 아이들과 함께 엄마가 학교 다닐 때 먹던 그 맛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까만 봉지를 집에서 여는 순간, 못난이 만두가 나의 25년 향수와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엄마손 떡볶이에 대한 기대를 져버렸다. 이건 못난이 만두가 아니다. 1개에 400원이나 하는데 이게 뭐람. 탁구공보다 더 작은 이 사이즈는 뭐람. 그리고 이 내용물은 정말.... 못난이 만두를 주문했는데 탁구공보다 작은 요상한 것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작은 것이 400원이라니.....

주인이 바뀌었나? 25년동안 같은 사장님이었는데 오늘 내가 갔을 때는 그 사장님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사장님도 연세가 많이 들어보이기는 했지만....

떡볶이도 예전의 맛을 많이 잃었다. 아이를 가졌을 때도, 지방에 근무할 때도 25년동안 그리워하면서 즐겨 먹었던 떡볶이를 이제 놓아 주어야 하는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음은 이미 떠나버렸다. 가장 큰 실망을 했던 것이 못난이 만두였다. 가난한 시절, 내 배를 채워주던 명지대 엄마손 떡볶이는 이제 추억속으로 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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