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그릴에서 바베큐로 힐링
덕양구 훼릭스 야구장 옆에 '숲속의 그릴'이라는 갈비집이 있다. 예전부터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 여태 미루다 가게 되었다. 그것도 단체로. 6월 3일 보궐선거로 임시공휴일이 지정되고 우리 '선거일 야구 멤버'는 또 모이게 되었다. 왜 선거일 야구 멤버가 되었냐. 한때는 매주 보던 야구 멤버였지만 각자 직장 사정으로, 가정 사정으로 자주 모일 수 없게 바빠지고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내게는 23년지기 멤버다. 나는 야구를 전혀 하지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야구 멤버다. 내가 야구를 하지 않는 내 야구 멤버들은 매년 선거일만 되면 이렇게 모여서 친선 야구를 하고 갈비를 먹는다. 가족들을 전부 초대해서. 그렇다. 나는 야구를 하지 않는 초대된 가족이다. 매년 선물과 고기로 손과 입이 즐겁고 이야기 소리로 웃음꽃이 피는 시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못줘서 아쉬운 그런 관계이다. 내게는 23년지기이지만 남편에게는 30년도 넘은 아주 오래되고 지속적인 끈끈한 사이이다. 이날은 야구를 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은 날씨였다. 청명한 하늘과, 적당한 바람,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한 오래된 지인들. 1년 사이에 일취월장한 실력을 뽐내기도 하고, 하루가 다르게 녹이 스는 체력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다 흐뭇한 웃음이고 이야기거리가 되는 날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많은 친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래된 좋은 지인과 친구들이 있다. 그게 내 강점이고 장점이다. 생활 반경이 좁은 나는 한번 좋은 관계를 맺으면 끝까지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성향이 있다. 쉽게 사람을 좋아하지도 못하는 성향탓도 있지만 한번 좋아하면 끝까지 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드디어 기대하던 숲속의 그릴에서 갈비를 구웠다. 갈비맛은 이미 맑은 날씨와 좋은 환경이 다했다. 여기서 뭘 먹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숲속이 주는 힐링과 즐거움은 컵라면을 먹는다 해도 행복할 분위기였다. 야채와 반찬코너가 따로 있었다. 아예 야채와 밑반찬을 가져다 먹을 룸이 따로 있었다. 야채를 세팅하고 고기를 익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솔솔 불었다. 나에게로. 고기 굽는 연기도 나에게만 왔다. 이리저리 피해도 안되겠다싶어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잠깐은 괜찮았다. 또 고기 굽는 연기가 내게로 왔다. 아~~ 숲속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면 이런 단점이 있구나. 연기를 빨아들이는 환기구가 없다. 그냥. 리얼. 캠핑이었다. 고기 연기가 오면 오는대로 다 쏘여야 한다. 그때 느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속에서는 고기를 굽는게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곳이라고. 고기는 환기 시스템이 잘 된 고기집에서 먹어야 한다는 엄청난 교훈을 느꼈다. 왜 멋진 자연 환경에 까페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는지 이해가 된 순간이었다. 예쁜 자연속에서는 우아~하게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 거라는걸. 영국 귀족들이 왜 그렇게 차 문화를 즐겼는지 이해가 됐다. 우아~해 보이니까. 그러고 보니 주문한 영국 찻잔은 언제 배송되려나.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는데 시간이 안간다. 고기 연기가 나를 따라다녀도 좋은 날씨에 바깥 나들이를 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휴식이었다. 못다한 이야기는 내년 지방선거일에 만나서 나누기로 기약하고 우리는 각자의 터전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단체로 밖에서 고기를 구워먹을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까. 각자 자기 길만 가느라 모이기를 꺼리는 이 시대에, 많은 인원이 모이는 자체가 내게는 소중한 시간들이다.